이별

write 2008/11/14 16:34 mmiya
  "그래."
  내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이 슬로모션의 컷들이 겹쳐진 것처럼 앉아 있던 그가 아직 남아 있다.
  그의 이별 통고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그 자신이 핑계가 되고, 내 모든 것이 핑계가 되고, 그 무엇이라도 핑계가 된다는 건, 이미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끝이 나 있는 거니까. 더 이상 무얼 재어볼 이유가 없었다. 그런 건 어느 한 쪽이라도 미련이 남아 있어야 가능하니까. 그저 서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가 먼저 지지부진한 이 눈치보기에서 용기를 냈던 것 뿐이다. 고마워할 일도 아니지만, 화낼 일도, 미안할 일도, 속상할 일도 아니다.
  눈물은 커녕 별 다른 동요도 일지 않을 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식어 있었나 보다. 허전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홀가분하지도 않다. 아쉬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다. 그래, 시원섭섭하다가 그나마 비슷할까.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지만, 시간이 지나 불쑥 그가 그리워질 날이 있을까. 괜시리 가슴아픈 날도 있을까. 그만. 생기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말자. 함께했던 추억만큼은, 그 시간 속에서만큼은, 행복했고, 소중했으니까. 떠올릴 날이 있다면, 기억이 거짓되지는 않았던 거니까.
  종업원이 다가와 그의 뒷정리를 한다. 그의 찻잔과 함께, 그의 모습도 사라졌다.
  내 잔도 마저 비우고 일어서야겠다. 이제부터 할까. 연락도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하던 친구들을 만날까.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갈까.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며 아이쇼핑이나 할까. 아, 담배부터 사야겠다.
  주말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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