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자막 방송으로 봤는데, 뻔히 들리는 우리말인데도 자막에 눈이 가는 걸
보니, 일본어에도 조금은 적응하고 있는 모양이다. 햇수가 늘어갈수록 여전히 벙어리라는 같은
대답을 들려주기가 부끄럽다. 그럼에도 같은 질문은 반복된다. 언제 돌아오느냐는 질문도 함께.
왠지 '못난 네가 거기에서 얼마냐 버티려느냐'는 소리로 들려서 껄끄러운 마음이 먼저
이는 걸 보면, 못나긴 한가보다. 뻔뻔함으로 아무리 가장해도,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한 구석에 앙금으로 남는다.
남이 보기에도 징그러울 정도로,
생을 깎아 먹으면서도,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가. 내 피는 심장에서만 뜨겁고,
그 곳을 벗어나면 금세 식어버리는 게 아닐까. 너무나도 대강 살아가는 자신이
참 한심하고 슬프다. 아, 이런 자기혐오의 말을 늘어놓는 순간에도 졸리구나. 하아.
누가 그랬던가, 많은 사람들이 한 소리던가, 우리 나라 드라마는 어떤 내용에서도 러브 스토리가 빠지지 않는다고. 사람이 사는 곳에 사랑타령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같이 사랑노래를 해보자면, 역시 부드러운 사람이 좋다. 아무리 가슴이 뜨거워도, 겉으로 냉정하고, 가시 돋힌 사람은 싫다. 나이가 들어도 상처받기는 여전히 싫은가 보다.
먼저 본 '뉴 하트'가 종종 오버랩되었다.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의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분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하는 걸까. 얼마나
이해하면 글로 풀어낼 수 있는 걸까. 상상만으로 끄적임을 뱉어내는 나로선 흉내도
못 낼 듯 싶다. 한계도 벗지 못할테지. 언제까지 이렇게 미지근하게 살까.
나를 뜨겁게 만들 일을 못 찾아서 일까, 뜨거워질 마음이 없는 탓일까.
어느 쪽이든 화살이 꽂히는 건 내 자신.
이 사람과 이 사람은
안 어울린다든가, 이런저런 대사는 참 생뚱맞다든가, 이런저런 스토리는 너무 우려먹는다든가, 투덜대기도
했지만, 계속 챙겨보게 된 건 그 만큼은 재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크기는 알 수 없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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