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또 길을 잃었다. 도로변의 거센 바람을 피해, 골목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 몇 번이고 다닌 길이건만. 어차피 안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하니,
익숙한 길이 나오면 더 들어가면 되는데, 아무리 걸어도 낯선 풍경만 이어진다.
걸어온 시간을 봐선 지나친 것도 같다.
목적지의 건물은 덩치가 크니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려나. 조금더 갔어야 했나. 좀더 안쪽인가. 역시 지나친 건가.
찾는 건물은 보이지 않고, 이젠 어디쯤인지 짐작도 가질 않는다. 발걸음을 멈춘다.
하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구름도 거의 없는 푸른 하늘. 태양.
아직 오전, 태양이 있는 곳은 남동쪽. 남쪽으로 내려와 서쪽으로 이동했다, 대체적으로.
애매하지 않은 큰 길이 있는 곳, 다니던 길이 있는 곳, 그래,
북쪽으로 가자. 다시 찾아올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아는 길을 찾자.
평일 오전의 주택가는 참 한산하다. 자전거로 지나친 사람이 세 명, 멀리
조그마하게 지나가는 것만 본 사람이 네댓 명 정도. 길을 물어 보려고
해도 사람이 없다. 대체 몇 십분 째 계속 걷고만 있는 걸까.
한 시간은 안 됐겠지.
아, 사람이다. 가게 창문 밑의 길을
향해 놓인 작은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이 보였다. 햇볕이라도 쬐고 있는
듯, 딱히 시선을 두는 곳도 없이 벤치에 기대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길을 물었다. 노인은 잠시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손으로 방향을 알려주며,
길을 일러주었다. 너무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또 남쪽으로 더 내려가야 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노인이 말했다.
"또 오면, 직원으로 써 주마."
"네?"
노인은 뒤에 있는 가게를 가리켰다. 간판도 없다. 입구의
문짝에 페인트로 써 놓은 듯한 '골동품'이란 글씨가 보일 뿐이다. 그 글씨
아래에 종이가 하나 붙어 있다. 종업원 구함.
"아."
어색하게
웃으며 가벼운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다시 그 가게를 지나치게
된 건 몇 달 뒤였다. 또 길을 헤매고 있었다. 노인도 여전히
같은 자세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노인을 보자, 길이 생각났다.
"왜
이리 늦은 게냐?"
노인이 말했다.
"아, 저, 가게를 찾아
온 게 아니예요. 또 길을 잃어서요. 그럼."
노인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느릿하게 일어섰다.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등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
능력도 모르는 멍청한 놈."
고개를 돌렸지만,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가게 문이 닫히고 있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노인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놈의 노인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욕이나
하고. 웃기고 있네.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그래, 내
능력을 알았으면, 알아서 잘 쓰고 살았겠지, 이러고 살겠냐고. 그런데 내 능력이
뭔데? 자긴 안다는 거야? 그래, 설사 안다고 쳐. 그게 골동품 가게랑은
무슨 상관인데? 아, 혹시 골동품을 알아보는 능력이라도 있다는 건가? 크,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한들, 얼굴 한 번 보고 그 노인네가 어떻게 아는데?
자긴 사람 능력 알아보는 능력이라도 있다는 거야, 뭐야? 설마. 에이, 그럴리가
없잖아.
신경쓰이기 시작하니 계속 생각난다. 가서 물어나 보자. 욕한 건
마음에 안들지만, 물어봐서 손해볼 것은 없잖아.
작정하고 가려니 정작
그 곳을 찾을 수 없다. 길을 잃어 우연히 간 곳을 찾는다는
게 쉬울리야 없지만, 이쯤이 맞는데 싶은 곳을 아무리 헤매도 그 가게는
보이질 않았다.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오기가 났다. 이왕 시작한 거, 꼭 찾고 말테다.
일주일
째, 드디어 찾아냈다. 아니 발견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몇 번이고
지나쳤던 길인 듯도 싶은데, 왜 이리 헤맸나 모르겠다. 아, 나 원래
길치지. 그렇다고 해도.
벤치는 비어 있었다. 가게 문의 구인 종이는
여전히 붙어 있다. 벤치 앞에서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쉬는 날인가.
덜컥. 갑자기 문이 열렸다.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뭘
하는 게냐?"
노인의 물음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하지? 내
능력이 무엇입니까? 뜸금없이 그렇게? 노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
"저, 저기, 물어 볼 게 있어서요."
여전히 찌푸린 얼굴이긴
하지만, 노인은 동작을 멈추었다.
"저, 지난 번에 말씀하셨던 거요. 에,
저."
꿀꺽. 침과 함께 말도 삼켜진다. 하아. 이 답답한 인간아.
"무슨 얘기? 답답하게 굴지 말고 얼른 말해."
"아, 저기,
아직도 사람 구하시나요?"
악.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이
바보가. 일 구하러 온 게 아니잖아!
노인의 인상이 펴진다. 그렇다고
웃는 것은 아니다. 잡고 있던 문의 손잡이를 안쪽으로 좀더 잡아당기며 노인이
말했다.
"종이 떼어서 들어와."